부산의 관문이자 교통의 요충지인 부산역 일대가 최근 급격한 상권 변화를 겪고 있다. 수십 년간 부산의 다양한 음식 문화를 대표해 온 전통음식점과 노포(老鋪)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그 자리를 돼지국밥 전문점들이 빠르게 채워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상권 변화를 넘어 부산의 음식 문화 지형도가 재편되는 신호탄으로 해석되며 지역 상인들과 시민들 사이에서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1년 사이에만 부산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과 초량역 사이의 음식점 거리를 중심으로 돼지국밥 전문점의 수가 놀라운 속도로 증가했다. 현재 부산역과 초량역 일대에서 돼지국밥을 상호에 포함하거나 주요 메뉴로 판매 중인 가게는 총 22곳에 달하는데, 이 중 5곳(약 29%)이 최근 1년 내에 새롭게 문을 연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해당 지역의 음식점 변화 속도가 얼마나 급격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특히 주목할 만한 현상은 부산역과 초량역 사이에 위치한 맥도날드 뒤편 사거리 일대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 좁은 골목에만 무려 6곳의 돼지국밥집이 밀집해 있어, 인근 상인들과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돼지국밥 로드'라는 별칭이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다. 특히 이 지역에서 '웨이팅 맛집'으로 명성을 쌓은 본전돼지국밥 주변으로는 최근 1년 사이에만 3곳의 국밥집이 새롭게 간판을 걸었다. 부산역 인근 직장에서 15년 넘게 근무 중인 한 50대 남성은 "15년 이상 영업을 이어오던 대구탕집마저 최근 문을 닫았는데, 그 자리에도 곧 돼지국밥집이 들어설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외식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돼지국밥 열풍'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우선 부산역 인근에서 오랫동안 영업해 온 몇몇 유명 돼지국밥집들이 관광객들 사이에서 '꼭 가봐야 할 맛집'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시작됐다. 이들 가게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은 그 자체로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여기에 최근 몇 년간 SNS와 맛집 애플리케이션의 영향력이 증대되면서 돼지국밥은 부산을 대표하는 로컬 음식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이제 돼지국밥은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부산 시민들 사이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유명 돼지국밥집은 영업 시작 전부터 줄을 서는 이른바 '오픈런'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돼지국밥 전문점 창업에 뛰어드는 자영업자들이 급증했고, 특히 이미 손님이 몰리는 것으로 입증된 부산역 일대에 집중적으로 '깃발을 꽂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지역 상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다. 최근 부산역 인근에서 돼지국밥집을 개업한 한 사장은 "부산역은 외지인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부산의 관문이기 때문에, 부산을 대표하는 돼지국밥집이 많아지는 것이 관광객 유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경기 침체로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한번 상권이 형성된 곳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기대감이 있어 서로 협력하며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돼지국밥 전문점의 급격한 증가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가장 큰 우려는 부산역 인근의 다양한 음식점들이 밀려나면서 지역 상권의 다양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문을 연 돼지국밥집들의 상당수는 일본식 초밥 전문점, 밀면과 설렁탕집 등 수년간 영업해 온 전통 음식점들의 자리를 대체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역 일대 상권은 역사적으로 부산의 관문 역할을 해온 만큼 다양한 업종이 공존했던 지역이다. 부산항과 가까워 선원과 상인들이 즐겨 찾던 횟집과 주점이 성업했고, 장거리 여행객을 위한 대형 식당부터 지역 주민을 위한 소박한 분식집까지 24시간 영업하는 음식점도 많아 한때 부산의 다채로운 음식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부산역 인근 사무실에서 10년째 근무 중인 안 모(45) 씨는 "과거에는 점심 메뉴를 고를 때 한식, 중식, 일식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는데, 이제는 돼지국밥집만 즐비해 선택의 폭이 크게 줄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또한 "너무 많은 돼지국밥 가게가 한 지역에 몰리면서 과열 경쟁이 우려되고, 무엇보다 부산의 오랜 전통을 간직한 노포들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부산시 관광진흥과 관계자는 "특정 음식이 한 지역을 대표하게 되는 것은 관광 측면에서 분명 장점이 있다"면서도 "다만 지나친 집중은 장기적으로 관광객들의 식상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음식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부산관광공사의 한 관계자는 "돼지국밥이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분명하지만, 부산에는 밀면, 동래파전, 기장 멸치회 등 다양한 특색 있는 음식들이 많다"며 "한 가지 음식에만 의존하기보다는 부산의 다양한 음식 문화를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역 일대의 '돼지국밥 로드' 형성은 단순한 상권 변화를 넘어 지역 경제와 문화적 정체성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현상으로 해석된다. 관광객들에게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 문화를 집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지역 음식 문화의 다양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앞으로 이 '돼지국밥 로드'가 부산의 새로운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할지, 아니면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